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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물장 잇는 김현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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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9-10-24 10:41:02
내용

쪽빛 하늘을 담았다. 쪽빛 바다를 담았다. 쪽빛은 짙은 푸른빛을 뜻한다. 쪽물을 들인 원단에는 청명한 가을 하늘과 짙은 바다가 담겨 있다. 마디풀과로 한해살이 풀인 쪽은 예부터 남색을 대표하는 말로서 이 색을 내는 염료로 사용돼 왔다. 쪽염(染·물들 염)에는 인고의 시간이 걸린다.

쪽을 얻기 위해 땅을 일구어 1년에 한 번 쪽 씨앗을 심고 9월 말쯤인 가을에 수확한다. 쪽잎을 한 잎 한 잎 따서 물에 재워 쪽의 원액을 얻는데, 수년간 미생물의 숙성·발효 과정을 거쳐야 쪽물이라는 염료를 얻을 수 있다. 이어 쪽물에 담근 천을 다시 공기와 접촉시켜 산화·환원이라는 화학적 변화를 거쳐야 비로소 쪽빛 하늘을 담아낼 수 있다.

쪽염은 고려 불화인 백의관음 등을 통해 유물로도 전해지고 있고, 수많은 불교미술 작품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다양한 미생물이 살아 숨쉬는 쪽물은 유물을 천년 넘게 오래도록 보존하게 한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이 쪽물 들인 천을 장롱 속에 넣어두어 다른 섬유에 좀이 슬지 않도록 했다고도 전해진다.

쪽물장 잇는 김현우씨가 김해시 진례면 쪽물장 전수관 마당에서 쪽물을 들인 천 사이에서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쪽물장 잇는 김현우씨가 김해시 진례면 쪽물장 전수관 마당에서 쪽물을 들인 천 사이에서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불가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오다 그 명맥이 사실상 끊어져 있던 우리나라 고유의 쪽염법을 되살리고 이어오기까지는 그 작업 과정만큼 인고의 시간이었다. 고담 김광수(72) 선생은 지난 2017년 10월 경상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42호 쪽물장으로 인정받았다.

김 선생은 1995년 말 40대 후반의 나이에 폐암 말기로 6개월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그는 어릴 적 한 스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떠올려 ‘죽기 전 쪽염이나 해보고 죽자’는 결심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도 접고 산으로 들어갔다. 장고 끝에 지금의 쪽물을 얻었고, 이것으로 물들인 옷도 입고 이를 직접 마시기도 하며 암도 잊은 채 지금껏 쪽물에 심취해 있다.

김현우씨가 김해시 진례면 쪽밭에서 수확한 쪽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현우씨가 김해시 진례면 쪽밭에서 수확한 쪽을 들어보이고 있다./김승권 기자/

하지만 김 선생의 쪽염은 지난 2011년 화재로 큰 위기를 맞았다. 작업실이 불타면서 그간 모은 자료와 쪽염 원단들이 잿더미로 변했다. 김 선생의 곁에 있던 3명의 제자들도 하나둘 떠나버렸다. 맥이 끊길 뻔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아들 현우(36)씨가 뒤를 잇겠다고 했다. 지난 2016년부터다. 김씨는 아버지가 살려내고 아버지를 살린 쪽물의 가능성을 믿고 이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지난 21일 김해 고담쪽물전수관(김해시 진례면 진례로 147번길 66)에서 그를 만났다.

쪽물장 잇는 김현우씨./김승권 기자/

◇“처음에 큰 뜻은 없었습니다. 단지…”

김씨는 원래 호텔에서 일했다. 20대 초반 군대를 전역한 뒤 부산의 한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33세에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하기 전까지 호텔, 예식장 등이 그의 일터였다. 대개의 서비스업이 그렇듯 김씨에게는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쉴 때도 일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쉬는 날이면 자기 바빴다. 김씨가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처음에 결심했던 이유는 내 생활, 내 시간, 내 삶을 갖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원래 하던 일은 생활패턴이 굉장히 불규칙적이었고 도저히 내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 친구들이랑 여행을 가고 싶어도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며 “아버지께서 무형문화재 신청을 앞두고 제게 도움을 요청하시면서 입문하게 됐다. 여기 와서 아버지를 도와드리면 나름 생활도 규칙적이고 내 생활을 얻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실제 이 일을 하고 난 뒤 누군가를 만날 여유가 생겼다”며 수줍게 웃었다.

◇어느새 쪽빛으로 물든 두 손

우리 전통문화를 잇겠다는 대의에서 시작한 쪽염은 아니었지만, 김씨에게는 쪽염에 인생을 건 아버지의 장인 정신이 점차 물들고 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열 손가락 끝의 손톱이 온통 쪽빛으로 물든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매년 김해에 6600㎡, 창녕에 1만6500㎡에 이르는 쪽밭도 일구고 있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그에겐 쉽지 않은 일이지만, 힘든 만큼 쪽의 소중함을 알아가고 있다. 그는 “농사가 제일 힘들어요. 하지만 그렇게 힘들여 수확한 쪽으로 예쁜 색이 나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 쪽염은 수학공식처럼 얼마 얼마를 넣으면 반드시 얼마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물에 똑같은 천을 물들여도 다르게 나온다. 그러다보니 예쁜 색이 나왔을 때 스스로 대견할 때가 있다”며 “아직 아버지의 칭찬을 받은 적은 없지만…”이라며 옆에 앉은 아버지를 슬그머니 바라봤다.

주변의 반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금전적 문제가 가장 컸다. 한복 등 수요도 점차 줄어가는 요즘에 쪽물로 일정한 수입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현우씨가 도지정 아버지 고광수(무형문화재 제42호 쪽물장)와 손을 마주잡고 있다. 부자의 손톱에 쪽물이 들어있다./김승권 기자/

◇“제게 쪽물장은 안타까움입니다”

아버지가 천신만고 끝에 살려낸 쪽물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현실이 김씨에겐 가장 큰 안타까움이다. 심지어 잘못 알려진 것도 많은데, 더 안타까운 것은 잘못 알려진 개념들이 이미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다 보니 이를 사용하지 않고선 사람들과 대화하기도 어렵다는 데 있다. 김씨는 대표적으로 염색(染色), 천연염색(天然染色)을 예로 들었다.

김씨는 “사실 쪽물장하면 모른다. 이래저래 설명을 해야 하는데 염색, 천연염색이라고 하면 쉽다. 하지만 이 말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저도 아버지 곁에서 배우면서 알게 됐다”며 “염색은 물들 염, 색 색이다. 쉽게 말해 단풍이 ‘물들어오다’가 염이고 ‘물들었다’가 색인데, 두 단어는 합쳐질 수가 없다. ‘염’이나 ‘물들임’이라고 하는 게 맞다. 중국 등에서도 염이라고 하지 염색이라고 하지 않는다. 천연염색은 특히나 말이 안 되는 것이 천연은 사람의 힘을 가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말하는데 염을 하기 위해서는 식물을 끓인다거나 으깬다거나 인위적인 힘이 동반돼야 염료를 얻을 수 있다. 식물 염이라고 하면 모를까”라고 말했다. 경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때 염색장(쪽물장)으로 된 것도 쪽물장으로 다시 바꾸었다.


쪽물장 잇는 김현우씨./김승권 기자/

◇많은 사람들에게 쪽물 들 때까지

김씨는 사업을 확장해 일반시민들에게 생소한 쪽물을 알리는 것이 목표다. 그는 “요즘 사람들은 자기에게 필요하면 스스로 알아보고 찾지 않느냐. 그래서 사람들에게 쪽물이 왜 필요한지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며 “한복 등 수요가 떨어지는 현재, 단순히 천에 쪽염을 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지금 아버지와 함께 쪽물을 분말화하는 등 그 성분으로 화장품, 헤어 염색약으로 만들고 있다. 쪽은 인체에 유해하지 않고 오히려 건강에 좋기 때문에 그 필요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동의보감을 보면 쪽의 약효에 대해 나와 있고 향균성도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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