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로그인
이메일
사이트맵
관리자
지역정보
제목
나의 작품을 말한다 (19) 서양화가 윤병석
닉네임
관리자
등록일
2010-11-05 17:58:53
내용
<경남신문> 나의 작품을 말한다 (19) 서양화가 윤병석 “혼돈·질서·자유로 화폭 속 오케스트라 추구” 나의 작품을 말한다 지방에서 작업하고 있지만 세계가 먼저 인정한 서양화가, 빅스타의 기회를 여러 번 가졌으면서도 유명해지길 멀리한 노화백. UN(국제연합)의 요청으로 UN건물에 작품을 소장하도록 한 실력파. 우리나라를 포함, 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문 ‘조개 모자이크 회화’를 창시해 보급하고 있는 인물, 윤병석. 가고파의 고장, 마산만이 내려다보이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완월동에서 작업하고 있는 서양화가 윤병석(76·前 창원대학교 예술대학장·명예교수) 화백. 작가로서 독특한 작업세계를 구축하고,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다 고향에서 작업하고 있는 그에게는 수식어가 많게 마련이다. 최근에는 수식어를 하나 더 달았다. 백발의 농도가 더 짙을수록 작품의 대중적 인기가 더 올라가는 ‘부도옹(不倒翁·오뚝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창원상공회의소 1층에 있는 챔버갤러리에서는 윤병석 화백의 기획초대전이 지난달 12일부터 오는 19일까지 열리고 있다. 자신의 국내 14회, 국외 15회 등 29회 개인전이다. 지난 1993년 서울 ‘예술의 전당’ 전시 이후 국내에서 17년 만에 갖는 흔치 않은 전시회. 그를 아껴온 마니아들은 전시작품 15점 중 이미 절반을 구입해갔다. 윤 화백 작품에 대한 시장의 반응에 상공회의소 관계자들도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윤 화백을 만나 그의 인생의 전환기와 작품세계, 작가로서의 고뇌, 작품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알아봤다. UN이 기증해 달라고 요청한 한국인 작품 1996년 7월 2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UNEP(유엔환경계획) 본부에서는 윤 화백의 작품인 ‘미팅1’ 소장 개막식이 열렸다. UN의 고위층과 UN 한국대사 등이 개막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윤 화백은 정작 이 중요한 개막식에 가지 않았다. 아니 못갔다. 장남의 결혼식이 개막식과 맞물려 작가로서 일생일대에 한 번 올까말까한 빅찬스를 아버지 노릇 한답시고 거절하고 말았다. 윤 화백의 작품이 UN에 걸린 배경은 1995년을 더듬어봐야 한다. 당시 미국 뉴저지시티유니버시티의 초빙교수로 있을 때 조개 모자이크 페인팅 한 점과 페인팅 수십 점을 교수미전에서 전시했는데, 조개 모자이크 페인팅이 코리안보이스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이후 대학 측은 윤 화백에게 조개 모자이크 페인팅 오픈강의를 맡겼고, 이듬해인 1996년 3월 대학에서 전시회를 마련해 작품 ‘미팅2’를 학교 측이 소장했다. 한국작가에 대한 미국사회의 신선한 반응을 감지한 UN에서는 윤 화백의 조개 모자이크 페인팅 작품을 기증받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여러 차례 공문을 주고받으면서 결국 한국정부가 국가연합체인 UN에 기증하는 절차를 밟아 UN에 걸리게 됐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 정부의 기증으로 UN에 소장됐다는 의미와 UN환경계획 사무총장을 만나려면 반드시 ‘미팅1’ 작품을 거쳐야 한다는 UN의 배려가 깔려 있다. 이미 스타의 자리를 놓친 적도 있었다. 1970년 11월 미국무성의 미공보원에서 제작한 리버티뉴스 720호에 한국인 화가로서는 천경자·김기창·김흥수 화백에 이어 네 번째로 소개돼 이를 기념하는 미국무성 초청 전시회가 주어졌는데, 그때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가지 못했다. “피카소와 클레의 자질을 가진 작가” 1976년 1월 16일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폭스·블라드紙’의 미술평론가는 윤 화백을 보고 “피카소와 클레와 같은 자질을 지닌 작가”라고 언급하면서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당시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전시회에 추상화와 조개 모자이크, 묵화, 유화 등 추상계열의 다양한 작품을 걸었는데, 평론가가 이를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외국 평론가로부터 극찬을 받은 윤 화백은 어릴 때 체계적으로 그림을 배우지 못했다. 어릴 때는 보고 베껴가면서 그렸고, 중학교 때는 혼자서 그렸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한 것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원양성소에서 이론과 실기를 접하면서부터. 유학은 1975년에 비엔나국립미술대학에서 4년간 최고과정에서만 그림공부를 했다. 유학하면서 대학, 교육원, 학교, 교황청 선교사업처 등에서 강의도 많이 했다. 그에게는 전속 강의실까지 배정됐는데, 이방인의 이 같은 활약은 당시 현지 신문에 많이 소개돼 있다. 어쩌면 “그림은 인생의 전부이다. 그림 하는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는 윤 화백이 그 원론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피카소든, 클레든, 이미 알려진 대가든 그 기질이 몸과 화폭에 묻어 나오는지도 모른다. 윤 화백은 국내보다 외국에서의 활동이 더 도드라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뉴욕타임지 1997년 1월 5일자에는 윤 화백의 기사가 커버스토리로 대서특필돼 있다는 것이다. 당시 뉴욕의 한국인 화가 7000명 중 아무도 그렇게 크게 나오지 못한 극찬이었다. 한국에서 보면 외국작품 같고, 외국에서 보면 지극히 동양적 정서를 담은 한국작품의 질감과 색채를 뉴욕타임지가 간파한 것이다 스콜라철학에 기반 둔 추상과 구상 윤 화백은 자신의 작품에는 스콜라철학이 녹아 있다고 설명한다. 이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내려오는 교부철학에 바탕을 둔다. 윤 화백은 스콜라철학의 어떤 부분에 매료된 것일까. 스콜라철학에서의 예술은 ‘불완전한 자아의식으로부터 완전한 자아의식으로 도달해가는 작업’으로 본다. 어느 시점까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늘 부족하고, 늘 자꾸 채워야 한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그는 “현재 윤병석은 2개가 있다”고 강조한다. 제1의 윤병석은 이미 대가 반열에 도달한 윤병석이고, 제2의 윤병석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윤병석이다. 철저히 스콜라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대목이다. 윤 화백은 “그러니까 도달하지 못한 윤병석을 일깨우기 위해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려야 조금이라도 더 완성된 나 자신에 도달해 간다. 진정한 예술가는 붓을 놓는 것이 아니라 죽는 날 ‘생각’을 놓는 것이다”며 “죽는 날 붓은 들고 생각만 놓겠다”고 핏대를 세운다. 윤병석 미술은 크게 보면 ‘혼돈과 질서와 자유’를 노래하고 있다. 어릴 때는 멋모르게 혼돈스럽게 되는 대로 그렸고, 대학에서는 그림을 생각하면서 의식을 넣고, 질서를 잡아 나갔다. 그러다 너무 까다롭고, 너무 틀에 갇혀 갑갑해 깨고 나오려는 자유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이 윤 화백 작품의 변화과정이기도 하고, 작품패턴도 이 과정을 따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가 즐겨 사용하는 선은 기하학적 추상이며 질서를 갖고 있다. 또 거기서 끝나지 않고 깨려는 자유를 작품에 투영시킨다. 그래서 윤병석 그림에서는 혼돈과 질서와 자유가 따로 놀기도 하지만, 대작에서는 한 화폭에서 놀고 있다. 추상적 형태의 선, 리듬을 타고 흐르는 율동의 겹침, 강렬한 터치를 토해 내는 원색의 붓자국들이 조개 모자이크와 함께 놀아나 ‘조개 모자이크 페인팅’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그림을 탄생시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의 작업세계는 원시와 현대의 만남, 입체와 평면의 조화, 구상과 추상의 로맨스, 동양과 서양의 합창이며, 작품 안에서 각각의 소리를 내는 동시에 하나의 소리를 발산하는 오케스트라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오케스트라는 UN에 작품을 소장하게 했고, 1980년 비엔나 국립박물관에 소장하도록 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지난 2000년 창원대 예술대학장으로 정년과 동시에 자유로운 예술가의 길을 가려 했지만 그동안 화가의 집안을 책임져준 부인(김혜경)을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 자신의 야망을 잠시 접어놓고 있다. 하지만 ‘윤병석은 살아 있어!’라는 자신의 존재감을 세계에 각인시키기 위해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비엔나에서 강의를 들은 이탈리아 프랑스 등 8개국 600여 명을 모아 그다음 행동계획을 짤 생각이다. 특히 워싱턴, 뉴욕에서는 조개 모자이크 페인팅을 완벽하게 심어놓고 올 계획이다. 후계자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그 후학들이 ‘윤병석 예술 정신’을 닮고, 자기 미술로 만들어 조개 모자이크 페인팅이 확산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미 1997년 6월 세계 대학교 총장 120명으로 구성된 민간단체인 IAEWP(세계평화를 위한 교육자국제연합·뉴욕)로부터 ‘유엔아카데미평화상’을 받을 때 ‘예술계의 영원한 방랑자’라는 짐을 부여받았다. 돈과 명예와 시간으로부터 탈출해왔던 힘겨웠던 성상들, 명예를 버리고 거지처럼 살아도 ‘위대’해지길 원했던 우직한 작업들,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았던 작가적 열정. 노화백의 남은 길이 한참 멀고 험난해 보이지만, 그를 아끼는 마니아들은 그가 어떤 날 ‘생각’을 놓는 그때까지 그를 지켜보면서 박수갈채를 보낼 것이다. ☞윤병석 화백은= △UN아카데미 평화상 △대한민국 옥조근정훈장 △마산시문화상 △함안예술인상 △경남예술인상 △경남도문화상 △한국미협 자문위원 △경남원로작가회장 △경남도립미술관 운영위원장 <글=조윤제기자/사진=성민건기자>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558
9649521
Enter password